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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0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고통 3부작 문장 인용 및 생각해볼 점 공유

2024년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인 한강 작가님의 소설 3권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채식주의자” 에서 함께 나누면 좋을 문장들을 뽑았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 3권을 읽고나서
리얼디베이트가 뽑은 주요 포인트들에 대해
주변 사람과 같이 대화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컨텐츠의 특성상 강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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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온다_1

5장 눈동자 167p 중,
“더 추운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5장의 화자는 과거 광주에서 겪었던 일을 증언해달라고 지인의 소개를
받은 작가의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비대면으로 얼굴도 이름도 노출이 없는 것을 조건으로 하니 인터뷰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지요.
이에 대해서 거절을 하고 있는데요, 독자들은 “왜 응하지 않는 것일까?
부조리를 밝히고 싶지 않은 걸까?”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뽑은 문장이 나오기 전 화자가 받은 고문의 내용이 상세하고 생생히 묘사가 되어있어요.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당시 일을 증언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시 그 기억을 대면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가
오늘까지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감추고 숨고 싶어하는 심정에 대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책 전반에 걸쳐 절절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소년이온다_2

207p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말하는 고문 생존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언급된 2009년의 용산 참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일대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던 철거민들이
망루를 점거하고 이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사건이 일어나
철거민과 경찰이 다치거나 숨진 일이지요.
이 사건은 점거시위가 벌어진지 25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불이 나게 하여 사람을 죽인 책임은 철거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자들은 옥고를 치르게 됐고
석방된 이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된 일이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나’가 용산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광주를 떠올린 것은 망루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사람이 죽어나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며 두려운 기억.
‘나’에게 있어서 광주가 그러했기 때문에.

40년 전 광주에서의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사의 한 자국으로 남을 뿐일까요?
살아남은 자들에게 광주에서의 일은 현재입니다.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잊고 싶고,
진실을 알리고 싶지만 쉽게 증언할 수도 없습니다.
광주를 겪은 사람들에게 그 날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온다_3

p.133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배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위의 문장은 광주의 소년병들이 잡혔을 때입니다.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들어오고 시청 건물까지 들어왔습니다. 학생들은 총을 가졌지만
차마 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인에 의해 사살되거나 끌려갔습니다.
특히 나이 어린 ‘소년’ 동호도 무장을 풀고 항복하며 내려왔지만 바로 사살되는 장면을 넣어서 사태의 심각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 이렇게 해야 했던 것은, 정권이 계엄령을 내리면서 광주를 진압해야 한다고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끌려간 소년병들은 상무대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한 행위를 사과하고 진술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역사가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밤 다시 한 번
반복될 뻔 했습니다.
단 6시간 동안이었지만 “소년이 온다”의 이야기가 언제든 역사 속에서
반복될 수 있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 긴 밤이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광주의 이야기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얼마 전의 일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참으로 어렵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을 일구어 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이 오늘에도 여전하다는 것 또한
온 세계가 함께 지켜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이 더 널리 더 오래 계속 읽혀지며
우리들의 동시대와 후시대를 살아갈 세상 모든 이들의 가슴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불씨가 항상 타오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소년이온다_4

p. 189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제 6장 ‘꽃 핀 쪽으로’는 ‘소년이 온다’의 소년 동호의
어머니의 시점으로 서술되어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만약 계엄군이 몰려왔던 그 날 막내 아들을 어떻게든 끌고 나왔으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까.
그 날 정미와 정대 남매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면 동호가 정대를 찾겠다고 나서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후회와 슬픔을 삭히면서 묵묵히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유족회 부회장의 연락을 받고
전두환이 올 때 엄마들끼리 현수막을 흔들자,
구호를 외치자고 했지만 곧바로 경찰에 끌려가버렸습니다.

경찰서에서 앉아있으면서 얼마나 분하고 무기력함을 느꼈을까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어버이를 일찍 잃은 아이를 지칭하는 말은 있지만,
아이를 일찍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구요.
동호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아들이 남았고 건강이 안 좋은 남편을 돌보며 장사를 해야 했던 어머니는 오랜 시간을 그저 참아야 했을 것입니다.

경찰서에 끌려오는 경험은 사람을 더욱 위축시켰을 수 있습니다.
벽에 당당히 걸린 반란군의 얼굴에서 위압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박살낸 군인들에게 자식을 잃은 것이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동호의 어머니는 형사들의 책상 위를 뛰어다녔습니다.
계엄에 맞춰서 7시면 집에 들어가고 조용히 살아가기만 했던
어머니는 달라졌습니다.
발이 다쳐도 구호를 외치고 서울의 집회에도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 가슴 속의 동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
화가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망설임은 결국 후회를 남깁니다. 주저함은 될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이 행동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현재가 내리는 결정이 나와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놓을 것입니다. 동호의 어머니처럼
너무 시간이 흘러려 보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용기를 내야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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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않는다_1

p.132~p.133 중

“혼자만 산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불꽃 같은 게
활활 가슴에 일어서 얼어죽지 않은 것 같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도 토박이로 학살을 겪고 살아남아
실종된 가족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평생 이어왔습니다.
인선의 어머니는 겪었던 시간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경산으로, 또 바다로, 뭍으로 가면서 몇 십년의 세월간
기억하고 찾으려 했던 이유는 인선의 어머니 안에 불꽃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제주 4.3 사건의 내용은 인선이 들은 내용을
경하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전달하는 사건의 내용이 참으로 생생한 것은,
학살의 대상자들의 안에 있는 불꽃이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불꽃은 과거의 고통과 상처이지만 그 멍에에서 벗어나거나 맞서는
용기이고 그게 열정과 집념이 되어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내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스스로를 구하려고 애쓰는 힘이 불길이 번지듯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딸 인선과 그 친구 경하에게까지 퍼져나갑니다.
과거를 바라 보고 상처를 보듬어 내일로 나아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중요한 평생의 과제입니다.
그래야 불꽃이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불꽃을 이어감으로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은 4.3 사건과도,
가족들과도 작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작별하지않는다_2

p.27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에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소설 속에서 작가인 경하는 광주 5.18에 대한 소설을 다 쓰고 나면
소설을 쓰며 간접체험했던 당시 사람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거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책을 어서 출간하고 나면 자신을 괴롭히는 반복되는 꿈에서도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꿈 속 겨울과 바다와 나무의 시린 풍경에
잠 못 이루는 무수한 밤들을 겪다가 경하는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썼던 책 속에서 등장한 사람들이 죽어가며 남긴 이야기의 무게는
글을 퇴고하고 출판사에 넘기듯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작별인사 같은 ‘작별’이라는 소설을 쓰던 경하는 마음을 고쳐먹고 광주 5.18에 대한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담긴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마침내 직시합니다.
자신을 좇아다니는 악몽의 흰 눈 덮인 바닷가의 풍경에 묘비처럼 가득 채워진 검은 통나무와 밀려오는 파도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뛰어들어가 망령처럼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려 합니다.

2024년 12월 3일을 지나면서 우리는 1980년 5월 17일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던 광주 시민들은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안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인데 그 참상의 고통을 소환하는 일이
40여년이 지나 다시 반복될까봐 지금, 공포와 분노가 함께 차오르게 됩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알게 되었다면 그 일을 해내는 가장 빠른 길로 서둘러 헤쳐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밖에 길이 없다면, 삶이 계속되길 바란다면,
과거의 상처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말고 우리의 두려움에 맞서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작별하지않는다_3

p.86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인선이 열일곱의 나이 때 가출을 해서 축대에 넘어져 죽을 뻔 했던 그날도 눈이 왔었습니다.
입원한 인선의 옆에 인선의 어머니가 손을 꼭 잡고 눈이 올 때마다 기억이 나는 일을 인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을 학살하던 사건이 있었는데 인선의 어머니는 그 날 심부름으로 마을을 떠나서 살아남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언니와 함께 마을로 돌아와 포개진 시체들 사이를 걸으면서 가족들을 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날도 오전에 눈이 왔었는데 죽은 사람들의 뺨에 내린 눈은 녹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고 인선이에게 고백합니다.
인선이 눈 오는 날 겪은 사고로 인해서 인선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신의 속에 감추려 했던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그리고 인선이 축대에 넘너져 죽을 뻔했던 그 때,
인선의 어머니는 어린 인선의 얼굴 위에 내린 눈이 마치 시체들처럼 녹지 않는 꿈을 꾸며
인선이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슬프고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인선이 병원에 있을 때와 그 직후에만 과거에 겪은 자신의 고통과 흰 눈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지만
다시는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인선의 어머니에게 있어서 어렸을 때 겪은 가족의 죽음은 큰 트라우마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자식에게 전하게 되면 자식이 받을 고통을 염려해서 인선을 보호하려고
과거의 일을 굳이 입에 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인선이 죽을뻔했던 그 눈 오는 날의 고통과 충격은 어렸을 때 자신이 겪은 아픔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부모를 잃고 자신의 자식을 잃을 뻔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려면 그 고통과 상처도 함께 겪어내야하기 때문입니다.

p.78 “저 사람이 내 인생을 더이상 어둡게 채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가출을 결심하던 열일곱의 인선은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어머니 탓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하고 어머니가 어떤 상처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열일곱의 인선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모르는 어머니를 원망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인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인에게 잘 하지 않았는데, 경하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속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열일곱 가출할 당시에 인선은 자신이 왜 어머니를 미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고 경하에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 또한 평생토록 겪은 고통과 아픔을 딸 인선에게 숨기며 살아오고 있었고,
혹여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슬픔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게 하려고
딸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는, 자식을 사랑하는 평범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며 지키려했던 딸이 죽다 살아나자 딸에게는 굳게 닫았던 마음 틈으로
딸과 가까워지려는 사랑의 마음이 딸을 지키려던 사랑의 결심을 이기고 새어나왔습니다.
눈이 오던 날 평생을 괴롭히는 고통에 대해 딸에게 이야기 했던 것은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과 마음의 거리를 두면서까지도 지키려던 딸의 마음 깊이 닿으려는 인선이 어머니의 사랑이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인선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사실 엄마가 자신을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봐 어머니는 자신과 거리를 두고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p.86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온전히 편안해진 건 아니었다고 그 때 인선은 말했다.
… 하지만 잠시도 견디기 어렵던 미움은 그날밤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므로,
이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인선은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주에서 있던 학살의 현장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작업하게 됩니다.
인선이 가출을 하고 눈에 넘어졌던 사고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자신의 어머니를 각별하게 여기게 됩니다.

작별하지않는다_4

p. 150~151 방금까지 따뜻한 피가 돌았던 듯 생생한 적막에 싸인 조그만 몸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끊어진 생명이 내 가슴을 부리로 찔러 열고 들어오려 한다고 느낀다.
심장 안쪽까지 파고들어와, 그게 고동치는 한 그곳에서 살아가려 한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듣고 인선의 애완용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서 서울에서 제주도로 오게 됩니다.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경하는 폭설 때문에 길을 잃고 넘어지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겨우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일까요.
새장 속에 횃대에 서 있어야 하는 아마는 이미 죽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경하는 죽은 아마를 작은 손수건으로 감싸고 작은 통에 넣습니다.
그 통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통 안을 자신이 매고 있던 목도리로 감쌉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흰 수건으로 상자를 바깥에서 감싸고 실로 동여맵니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나무 앞에 흙을 파헤쳐서 아마를 묻어줍니다.

경하와 아마가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경하가 아마를 만난 것은 단 한 번으로 교감을 나눌만한 시간도 아니었고
본인이 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경하는 이 새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장례를 치러줍니다.
아마가 경하의 심장 안쪽까지 파고들어 왔다고 합니다.
심부를 찌르는 고통은 경하가 인선의 마음으로 아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로소 인선의 고통을 경하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선이 요청한대로 경하는 제주도에 오고 인선이 홀로 걸었을 길을 걸어가면서,
집에서 어떤 식으로 생활했을지 직접 보고 느끼면서 그리고 ‘인선이라면 아마를 어디에 묻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경하는 점점 인선의 마음과 감정에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아마의 죽음이 경하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경하는 이어서 인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작품 활동으로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인선과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경하는 인선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면서 주인공이 학살의 대상자도 아니었고,
그 가족이라던가 적어도 그 때 제주도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사건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타서 그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도 소설 속 사건을 직접 겪은 피해자와 무관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고서 소설 속 사건의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에 아파하고, 더 관심을 가지고, 애도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선이 들려주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를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깊은 상처까지 세상에 드러내려는 경하와 인선의 모습을 말입니다.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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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_1

p.159
죽었으면 좋겠어. 죽었으면 좋겠어.
그럼 죽어. 죽어버려.
…죽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이 왜 주문처럼 머리 안쪽에서 쉴새없이 터져나오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채식주의자의 2장,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는 비디오 작가로 이년 간 아이디어의 고갈로 큰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처제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것을 듣고서는
영혜를 찍고 싶다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처제를 여자로서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정만은 잃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 공포심,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내 몸에 꽃을 그리면, 그땐 받아주겠어?”

결국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린채로 영혜에게 가게됩니다.

오늘 뽑은 문장은 그(형부)가 영혜에게 가기 전 자신의 몸을 꽃으로 덮으러 가면서
차 안에서 울면서 본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도 분명 스스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죄의식이 스스로의 안에서 커져갔지만 불편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에 불과했습니다.
형부는 부부간의 정도 많이 없었지만 부부관계와 가족이라는 사회적 관계 마저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처제를 탐한다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잘못을 저지를 깜냥은 또 못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혜가 크게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황이 잘 맞아 떨어지자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버리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죽어버리라고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는 말을 하지만
결국 이것은 자신에게 스스로가 주는 심리적 면죄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소설 [채식주의자] 내에서 형부는 엄청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외려 좀 주눅이 들어있고 겁이 많은 면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누구라도 평소 가지고 있는 자기 욕망을 행동으로 옮길 힘이나 상황이 생겼을 때 쉽게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배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그려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3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심리적 풍경을 소설 속 형부를 통해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_2

p. 224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소설 채식주의자 의 마지막 챕터 나무 불꽃은 주인공 영혜가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한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입니다.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 병원에
왔을 때는 병원 시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언니 인혜로 하여금 동생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거니 싶은 마음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혜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는데요, 영양소의 섭취 자체를 멈추고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영혜는 3개월 이상을 식사를 거부하면서 몸이 마르게 되었고 내장도 퇴화하여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정신병원에서는 영혜를 위해서는 큰 병원으로 옮겨서
단백질 주사를 맞혀야 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영혜는 생명을 연장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햇빛과 물만 필요한 나무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p.224 “…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소설 속에서 영혜가 말을 함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장면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영혜의 내면은 영혜가 꾼 꿈의 내용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는데요.
영혜는 처음 꿈에서 자신이 꿈 속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죽였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꿈 속에서 누군가를 삽으로 쳐서 죽이고 그 살을 가르고, 피가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 꿈은 영혜가 겪었던 과거와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혜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을 서슴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자신을 물었을 때 아버지가 개를 무자비하게 죽였던 모습.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던 영혜.
이 때의 영혜는 개에게 자신을 이입해서 폭력을 당하는 모습에 대한 연민, 피해자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그 개를 다 같이 맛있게 나눠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 기억은 영혜를 혼란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죽은 고기를 먹고, 즐기는 자신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의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이 영혜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가 문득 꾼 꿈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폭력들과 복합적인 트라우마의 재현입니다.
육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을 것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감정을 거부하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혜는 자신이 받는 폭력과 자신이 행할 수 있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동물에서 벗어나 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망상 속에 살게 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무가 되는 것은 영혜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영혜가 맨 처음 육식을 거부한 것은 조현병의 시작으로 볼 수 있고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영혜가 고기를 끊었다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혜가 갑자기 채식주의를 시작했다고 보고
주변인 편한대로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영혜의 증상은 심해지게 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폭력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다른 장에서도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문장을 뽑아 가져오겠습니다.

채식주의자_3

p. 72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어느 날 꾼 꿈이 계기가 되어 채식을 시작한 영혜.
남편과 영혜의 부모님, 형제들은 이런 고집을 꺾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혜의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으로 해서 다 같이 모이는 날 일이 터졌습니다.
영혜에게 식구들이 강제적으로 고기를 먹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영혜는 자살 시도를 하고 병원으로 실려가지요.

소설의 이 시점에서만 해도 주인공인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다’ 라던지,
극단적인 식이장애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악몽을 꾸는 것으로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하였지만,
이 보다도 잠을 잘 잘 수 없는 것이 영혜를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영혜의 남편은 그저 상황을 방관하는 행동만 하게 됩니다.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아도 자신이 바라는 아내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상관이 없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혜의 증상이 심해지니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남편의 선택은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영혜의 친가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을 때 이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상태, 가족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강요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영혜에게 ‘왜 채식을 시작했냐’라고 물었을 때, 영혜의 대답은 ‘꿈을 꿨어요’ 였습니다.
하지만 채식을 하게 만든 확실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8살까지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면서 살아왔던 것, 남편의 화와 원치 않았던 잠자리 등 소설 속에서 평이하게 지나가는 사건이었지만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는 명치 끝에 걸린 답답함이 영혜를 우울과 정신병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본 소설에서 영혜의 심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하며 영혜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반대로 영혜 입장에서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가슴 속 답답함에 질식할 것 같아서 이를 소리쳐 꺼내고 싶지만 영혜는 이를 행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고,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미워하며 식사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행위로 치닫게 됩니다.
영혜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오랜 시간 그 안에 있는 고통에서 치유될 수 있게 곁에서 영혜를 이해하고 손 내밀어 줄 사람입니다.
영혜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고 마음이 회복 될 수 있게
영혜의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계속 영혜를 악몽에서 함께 살아갈 세상으로 불러 줄 사람이 영혜를 구할 사람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_4

p.210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병원에 입원하며 나무들을 바라보던 영혜가 언니 인혜에게 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혜는 나무들에게서 비폭력적이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그들이 마치 형제들처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채식주의자 ‘나무불꽃’ 장에서 영혜의 언니 인혜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육식을 거부하고 가족과 멀어지고 자신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제는 나무가 되려는 동생 영혜가
정신 병원에서 산책시간을 틈 타 비오는 날 산 속 깊이 들어가서 한 참을 비를 맞고 있는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때였습니다.
닷새째 열이 나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 가서 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을 때 인혜는
동생이 지내는 병원에서 영혜가 병원을 벗어나서 찾는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때 인혜는 동생 영혜가 겪은 일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p.185
혼령처럼 어른거리는 빗속의 숲, 검은 비, 검은 숲, 흠뻑 젖은, 희끄무레한 환자복, 젖은 머리칼, 캄캄한 산비탈,
귀신처럼 우뚝 선 어둠과 물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영혜.

그리고 열이 내린 아들에 안도하며 잠시 잠을 청했을 때 영혜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립니다.

p.186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나중에 병원에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될 때까지
물구나무를 서 있는 동생 영혜를 보러 갔을 때 인혜는 영혜에게서 다시 한 번 듣게 됩니다.

p.216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 땅 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그런데 인혜가 영혜에게서 잠결에 들었다는 그 이야기를, 영혜는 자신이 꿈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나무불꽃’ 장에서 동생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 나무가 되겠다고 금식하며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언니 인혜가 화자가 되어 자신과 영혜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데요.
영혜와 인혜가 모두 나무와 관련된 경험들이 이 장에서 주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마치 인혜가 먼저 꾼 꿈 속 이야기를 나중에 영혜가 다시 반복하듯이
두 자매를 이어주는 나무와 꿈 이야기는 이들에게 시공을 초월해서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며 이에 대한 자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먼저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는 숲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 들어가서 비를 맞으며 한참 동안이나 나무가 되려고 기다렸습니다.

p.235
소리가 들렸어, 라고 영혜는 링거바늘을 꽂고 누운 채 대답했었다.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간 것뿐이야…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 거기 서서 기다린 것뿐이야.

한편 인혜는 배우자 강간으로 오랜 기간 버텨왔던 삶의 기둥이 무너지고
자살할 결심으로 뒷산에 오르는데 거기서 목을 매달 나무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물러섭니다.

p.247
오히려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 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나무들이 형제같다는 영혜의 말은 인혜와 영혜에게 각각 다른 의미이면서도 이 자매를 이어주는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영혜에게 나무는 동경의 대상입니다.
목숨을 잃을 지언정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나무로 변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무가 되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과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영혜는 광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비폭력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나무는 영혜에게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영혜는 나무에게서 구원의 길을 찾습니다.

채식주의자_5

p.210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p.268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영혜는 나무들에게서 비폭력적이며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그들이 마치 형제들처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소설 마지막장에 영혜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면서
인혜가 바라본 숲과 나무들은 인혜에게 삶의 복귀를 지시하는 강력한 생명력의 존재로서
인혜는 그 이미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인혜는 배우자 강간으로 오랜 기간 버텨왔던 삶의 기둥이 무너지고 자살할 결심으로 뒷산에 오르는데
거기서 목을 매달 나무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물러섭니다.

p.247
빈 욕조에 웅크려 누워 눈을 감으면 캄캄한 숲이 덮쳐온다. 검은 빗발이 영혜의 몸에 창처럼 꽂히고,
깡마른 맨발이 진흙에 덮인다.
그 모습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면, 어째서인지 한 낮의 여름 나무들이
마치 초록빛의 커다란 불꽃들처럼 그녀의 눈 앞에 어른거린다.
그녀는 알 수 없다. 그것들의 물결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새벽 좁다란 산길의 끝에서 그녀가 보았던, 박명 속에서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결코 따뜻한 말이 아니었다. 위안을 주며 그녀를 일으키는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떤 나무도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을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무들이 형제같다는 영혜의 말은 인혜와 영혜에게 각각 다른 의미이면서도
이 자매를 이어주는 나무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영혜에게 나무는 동경의 대상입니다.
목숨을 잃을 지언정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나무로 변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무가 되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과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영혜는 광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비폭력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나무는 영혜에게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영혜는 나무에게서 구원의 길을 찾습니다.
한편 인혜는 자신의 삶을 내다 던질 곳으로 나무가 모여 있는 숲을 선택했으나
어느 나무도 인혜가 생을 마감하도록 허락하지 않자 인혜는 힘겹지만 다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인혜에게는 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이혼한 남편 사이에 둔 친아들과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과 나무가 되겠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여동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인혜에게 나무는 삶의 복귀를 지시하는 강력한 생명력의 존재입니다.
자살하려는 인혜에게 죽음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선택이 아니며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폭력과 생명의 메시지를 나무는 인혜에게 전합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단순히 하나의 나무만 내뿜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나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인혜에게도 나무는 형제처럼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공동체로 느껴집니다.

다시 영혜는 무수한 나무들 사이에 들어가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형제가 되고 싶어합니다.
나무들이 주는 메시지는 초록 불꽃만큼이나 강렬하고 명확합니다.
삶으로의 복귀. 그 메시지를 읽지 못하는 영혜는 고통에서 멀어지려고 나무가 되려는 선택을 통해
점점 삶에서 멀어지고 죽음으로 향하게 되며, 죽음으로 향하는 동생을 돌보며
다시 삶으로 복귀해야하는 인혜는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마치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소설이 끝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생명의 초록불꽃을 이어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입니다.
이 초록불꽃이 우리를 하나의 나무가 아닌 숲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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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노벨문학상을 받으신 한강 작가님의 소설에서 뽑은
문장에서 생각해보면 좋을 부분을 뽑아보았습니다.

앞으로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에서 독서토론에 좋은 논제를 뽑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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